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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에 사주팔자, 별점, 타로카드에 포춘쿠키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운명'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혹은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는가. 오늘도 누군가가 자신의 싸이월드 일기장에 진지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을 이 주제는 이제 진부할 지경이지만, 여전히 많은 창작물을 낳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을 뿐일 수도 있고,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까지 전부 운명의 일환일 수도 있다. 한파가 몰아 닥쳐 영하로 떨어진다는 11월의 둘째 주. 피해가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이 덮쳐오는 사건사고, '운명적인'이라는 장엄한 수식어를 달고 표류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도 푹신한 극장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자.


그들에겐 심각하지만 나에겐 코믹한 운명 「청담보살(2009)」

<시놉시스>
구룡산 맑은 정기 받고 럭셔리 청담동에 한 자리 크게 차지하신
섹시한 자태에 신기 팍팍 카리스마 눈빛 미녀보살 있었으니..
감히 입에 담기도 황송한 그 이름은 바로 청.담.보.살!
1978年 5月 16日 밤 11時 생
나의 운명의 왕!자!님!은 어디 계신가요?

청담동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미녀 보살, 태랑. 쭉빵 외모에 억대 연봉,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녀지만 스물 여덟 전에 운명의 남자를 만나야만 액운을 피할 수 있는 사주를 타고 났다. 어느 날 기적 같은(?) 사고로 눈길도 주기 싫은 찌질남 승원과 오매불망 첫사랑 호준을 동시에 만나게 되고, 태랑은 빌어먹을 운명과 사랑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신이시여! 지금 장난하십니까?
운명을 피할 수만 있다면 맨발로 작두라도 타겠어요!


 슬슬 날씨도 추워지고 지금까지 요 몇년 한해를 마무리 지어왔던 「미녀는 괴로워」나 「과속스캔들」같은 '빵빵 터지는' 한국 영화들이 기다려지는 시기가 왔다. 11월 첫 주에 개봉했던 한국 코미디 영화인 「킬미」와 「내눈에 콩깍지」가 기대이하의 부진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앞의 두 영화와 함께 11월 초반 3대 코미디 기대작이었던 「청담보살」이 마지막으로 스크린 위로 던져졌다.

 정해져 있는 운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일인 '청담보살'이 운명을 부정하며 그 것에 휘둘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기반으로, 본인에게야 심각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더욱 웃긴 상황을 연출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운명의 왕자님이 나타나 나를 공주로 만들어 주는 것, 좋다. 그러나 잘나가던 그녀 '태랑(박예진)'은 평강공주요,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운명의 왕자란 녀석은 바보온달이니. 아니, 바보 온달이라면 말이라도 잘 들었다. 말 오줌 시료 채취 알바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나날을 보내던 승원(임창정) 32세는 25살 이상은 여자가 아닌 사람에 불과하며, 25살 이하라도 예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라는 공공의 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남자다. '운명'이 무엇인지 이 놈 아니면 안 된다는데,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도 않으니 복장이 터질 수밖에.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이한 「청담보살」은 주말 예매율 2위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청담보살 태랑 역의 '박예진'이 의외로 밋밋한 연기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있으나, 코미디 연기의 베테랑답게 '임창정'이 맛깔스러운 연기로 관객에게 실컷 웃음을 퍼다 나른다는 소식. 더불어 코미디라는 장르가 15금을 달고 나오다보니, 여차하면 싸구려 같기도 한 야한 장면 들이 중간 중간 은근 있다고 하니 그런 계통을 별로 안 좋아 하시는 분들께 미리 알려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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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절망적이지만 나에겐 장엄한 운명 「2012」

<시놉시스>
고대인들이 예언한 2012년 인류 멸망, 그들의 예언이 현실이 된다!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인류 멸망. 2012년, 저명한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실제로 멸망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각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곧 고대인들의 예언대로 전세계 곳곳에서는 지진, 화산 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 재해들이 발생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도래한다. 한편, 이혼 후 가족과 떨어져 살던 소설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인류 멸망에 대비해 진행되어 왔던 정부의 비밀 계획을 알아차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데…
과연 잭슨이 알아차린 정부의 비밀 계획은 무엇인가?
2012년, 인류는 이대로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1996)」, 「고질라 (Godzilla, 1998)」부터 시작해서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 2004)」까지. 덤으로 붙이자면 쫄딱 망하기는 했었지만 「10,000 B.C. (2008)」도 끼워줄 수 있다. 어째 어디서 많이 본 제목들이다. 이 작품들이 모두 한 감독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가? 롤랜드 에머리히. 「2012」역시 '재난 영화' 전문 감독인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재난 영화'란 작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게 우리를 덮쳐와 뒤흔들어대는 재앙이 주가 되는 영화이며, 그 재앙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용감한 개인이 되는 것이 재난 영화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필연적으로 '영웅'이 탄생 할 수 밖에 없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최근 등장한 재난 영화 속에서는 '영웅'이 아닌 '살아남고자하는 소시민'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미국의 대통령을 세계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으로 만들어 욕을 먹기도 했던 「인디펜던스 데이」와는 다르게 이번 작품인 「2012」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사투'보다는 멸망해가는 세계 속에서 '가족'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난 영화 계의 거장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많은 작품들은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그는 '보여주기'에 치중한 말 그대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하며 최대한 강렬한 영상을 만들어내지만, 너무 보여주기에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 자체는 빈약하게 말라비틀어져 버리는 것이다.

 고대 마야 문명이 예언한 '2012년 멸망설'을 기초로하고 있는 「2012」역시 그의 특징과 한계를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와 동물만은 세계 멸망 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 매너있는 헐리우드 센스와 이륙을 위해 달려가는 비행기를 잡아 타는 등의 연출은 이젠 식상하기 그지 없다. 스토리를 신경쓰시는 분들이라면 피하는 것을 권한다.

 하지만 빽빽한 회색 빌딩의 숲이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 듯 스러져 가는 모습과 압도적인 자연재해 들은 160분 동안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볼거리이며,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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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서글프지만 나에겐 감동적인 운명 「제노바 (Genova, 2008)」

<시놉시스>
이별한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 시작할 곳을 찾는다.
상처와 슬픔 이후, 서로를 보듬는 더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

자동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조(콜린 퍼스)는 두 딸과 함께 이탈리아 제노바로 이주한다.
제노바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조와 달리
엄마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가시지 않은 두 딸들은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다.
큰 딸 켈리는 엄마의 죽음이 동생 메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동생을 멀리하고
제노바에서 낯선 남자들을 만나고 파티에 어울려 다니며 섹스와 마약에 빠져든다.
한편, 메리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에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피아노에 몰두하며 제노바의 생활에 적응하려 애쓴다.
켈리와 조가 각자의 생활에 빠져 있는 사이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메리는
아무도 모르게 제노바 곳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홀로 있던 메리는 항상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바로, 얼마 전 죽은 엄마가 메리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제노바의 골목길을 여행하던 메리는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마는데…

 마이클 윈터보텀. 20세기 영국 감독 중 손에 꼽히는 감독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그린「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ánamo, 2006)」과 영국 인기 밴드들을 배출한 맨체스터의 전설적인 클럽 하시엔다의 모습을 그린 영화「24시간 파티 피플 24 Hour Party People, 2002」등 작품을 제작해냈다. 

 「2012」의 롤랜드 애머리히처럼 한가지 장르에 전문화 된 감독도 존재하지만, 마이클 윈터바텀의 경우 그는 한 감독이 제작했다고 하기에는 놀랄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개개의 작품의 완성도 역시 나무랄 데가 없으니, 아내이자 어머니를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번 「제노바」역시 따뜻한 감동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말처럼 미국에 사는 평범한 한 가족에게 죽음의 그림자는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덮쳐온다. 차를 운전하는 어머니의 눈을 장난 삼아 가린 작은 딸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변명할 여지 없이 '그녀 때문에' 가족의 한 축이 사라져버린다.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버지는 이탈리아에 있는 제노바로 이주를 결심한다. 그러나 각각의 방법으로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기에도 급급한 가족들 사이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던 작은 딸 메리는 어느날 부터인가 어머니의 환영을 보게되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크게 터지는 사건도 없으며, 돌출되어 나오는 무엇인가도 없이 평범한 일상 처럼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상실감'을 내면으로 가라앉힌채, 극복하고자 살아가는 이 가족의 담담한 모습은 오히려 속에 내재된 '상실감'의 크기를 보여주기에 안타깝다.

 아내와 이혼하고 두 딸과도 헤어진 윈터보텀은 영화 속 아버지 '조'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 자신의 치유를 위해 조용히 띄어 보내는 것이 아닐까.

 추운 날씨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맘마미아」의 '콜린 퍼스'와 함께 상처를 사랑으로 덮는 모습을 따뜻하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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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카곤 혹은 인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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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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