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맞이하여. 정말 좋아하는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서른살의 청년 이회영이 물었습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자손이자, 명동 일대를 포함해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던 그의 집안은 손꼽히는 명문가였습니다. 일제치하에서도 일본군이 지역의 영향력있는 지주와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는 고관들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입닫고 귀막고 눈을 감았더라면 그 역시 '문명 개화를 위해 애써주는 좋은 친구가 생겼구만, 허허허'하는 무리에서 유유자적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6형제들은 경술국치를 전후로 하여 그 많은 재산을 급하게 처분하여 만주로 이주를 합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였죠. 그 이후의 생활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무기를 구입하고 생도들을 교육하는데 드는 비용은 어마어마했죠. 그와 그의 가족들은 옥수수풀죽을 먹으며, 찢어진 옷을 기워입고 자신들을 위해서는 마지막 한 푼까지 아껴가며 독립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의지를 꺾지 않고 부러져버리는 마지막까지 단단하고 곧았습니다. 형제 중 다섯이 굶어 죽거나 옥사했으니까요. 이회영 역시 1932년 상하이에서 검거되어 고문 끝에 사망합니다.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0년째 같은 제목으로 보고 있는 기사라, 이제 새삼스럽지도 놀랍지도...심지어 분노조차 희미해져가는 제목입니다.

 

'국가'라는 것은 이념적이고 관념적인 것입니다.

뚜렷한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태생적으로 부여받게 되는 제약들 중 실체를 지니고 있는 성별 등에 비해 보다 벗어버리기 쉬운 종류인 것 같기도 합니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은 지금 시대에 사실 폭력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일이 더 많구요.

 

그러나 여전히 국가의 힘이 강해져야 국민의 삶이 편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국은 소속된 개개인에게 이득을 안겨주는 행위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 역시 자신의 이득보다 전체의 이득을 추구하는 애국자가 있어야 공고하게 위치를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위기의 순간에, 국가 자신이 해체될 수도 있는 그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도와줄 사람. 마치 IMF때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가를 위해 인간 개인으로서의 욕구를 버리고 삶과 생을 바쳐 헌신하는 것.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국가의 보상과 대우는 그들의 몸 바친 애국을 국가가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말해줍니다. ‘애국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가-를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마치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사람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매년 8.15만 되면 신문은 구석에서 말합니다.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과연 누가 애국을 하고 싶을까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몸을 던졌던 희생 뒤에 남은 것은 국가의 무관심뿐이고, 차라리 자신을 열심히 챙겼더라면 벌지는 못했더라도 잃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인 것이다.“라고 말했던 이회영. 그에게 부끄러운 국가입니다.

 

마치 갓난아이를 업어 기르는 것처럼. 그 여린 손가락의 손톱이라도 상할까 최선을 다해 보호하는 어머니와 같은 국민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목숨을 버리고, 올바른 인성을 갖추기 위해 피를 흘리고, 배불리 먹이기 위해 손의 금가락지까지 뽑아 돌보는 국가입니다.

 

그런 국가가 호호 늙은 국민들의 구부러진 등에 업혀있습니다. 다 돌려줄 수도 없겠고, 1:1로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말문이 트였음에도 여전히 국가는 입을 다문 채 국민들의 조건 없는 애국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지속적인 애국을 요구합니다.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여전히 국가의 전력난 앞에서 국가가 전기 때문에 힘들다던데...’ 작게 중얼거리며 선풍기를 눌러 끄고 부채를 부칩니다. 모 신문은 그런 노인들에게 대학생들 도서관의 온도차를 이야기하며, 요즘 세태의 젊은 것들-을 비꼽니다. 관공서의 전등은 꺼버리지만 담벼락에는 볼거리를 선사한다며 화려한 전등을 쏘아 올리네요.

 

에어컨이 없는 생활을 죽어도 못 참겠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면 그깟 전기 하나 못 아끼겠습니까. 그러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이 더운 폭염 속에서 에어컨 대신 선풍기 버튼을 누르게 만들고, 선풍기 대신 부채를 부치는 국민의 양해를 얻어냈다면, 이들을 인내하게 만든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단이 제대로 이뤄져야죠. 짜낼 수 있는 기름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다시 살찌우는 것도 그 것이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모든 좋은 사람들이 보답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집안, 실내 온도 34도의 밤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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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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